상인 이야기
인문고전 속의 인물들, 여불위, 자공, 범려, 관중...
이들은 뛰어난 장사꾼들이었다!
‘유가의 도리(義)’와 ‘상인의 도리(利)’를 좇은 중국 전통 상인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장사란 무엇이고, 진정한 경영의 길은 무엇인지 묻는다
상인은 언제부터 출현했을까? 그들은 단지 재물과 권력을 좇아 천하를 누볐을까? 사마천이 쓴 『사기』의 「화식열전」에는 빼어난 경영 전략으로 큰돈을 번 범려, 자공, 백규와 같은 상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들의 성공담은 상업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사회 흐름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직업군에서나 근면, 성실, 신뢰는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이를 사회 주류의 철학적 개념에 접목시켜 시장에서 실천하는 것, 즉 명분과 실리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바로 중국 상인의 성장사이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 나선 송대의 사대부들에 의해 ‘의식경영(衣食經營)’이 대두되고, 사대부는 생활을 위해 상업에 뛰어들고 상인은 유학을 공부해 과거를 치를 수 있는 ‘사상합류(士商合流)’ 시대가 열렸다. 이후 유가가상과 상업을 결합시키려는 유상(儒商)들의 사회 참여가 두드러졌다. 상업이 발전하면서 원거리 무역이 발달하자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한 지역 상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대표적인 지역 상인으로는 휘주상인, 산서상인, 섬서상인, 연해상인 등이 있는데, 이들은 지역 특성이 강한 회관을 구심점으로 고유의 신앙과 영업 영역 그리고 상인 정신을 만들어 갔다. 끈끈하게 엮인 지역 상인의 고유한 문화와 경영 전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중국 각 지역마다 독특한 상인문화를 이루고 있다. 근대화의 기로에서 외국상인을 돕던 매판상인들 또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편, 의로움을 추구하는 유상들의 상인 정신을 이어받아 상업의 근대화를 촉진하는 매개 역할을 했다.
이렇듯 역사 속 역대 중국 왕조의 상업 정책과 사회 여론의 변화 과정 속에서, 다시 말해 유가사상이 지향하는 가치체계 안에서 상인이 걸어온 길을 따라 걸으면 오늘날 중국 상인들에게서 보이는 특징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한 변화 과정 동안 상인들이 겪은 시련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교훈이 되어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인들에게도 상인의 도리가 무엇이고 경영의 길이 무엇인지 일러 주고 있다.
떠오르는 세계 경제의 중심, 중국 상업의 성장史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제 트렌드는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글로벌 경제패권을 쥔 G2로 성장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외국인 직접투자가 영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할 만큼 ‘세계의 시장’으로서 전 세계 상인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made in China’에서 ‘made by China’를 거쳐 ‘made for China’를 이루기까지 불과 3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을 만큼 중국 경제는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런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놓고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중국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전통 상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상인 정신을 살펴보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오래전부터 농업사회의 탄탄한 경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었다. 농민이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세원이다 보니 역대 통치자들은 농업과 농민을 주요 정책의 중심에 둘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농업사회가 안정될수록 상업과 상인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상업은 농업보다 월등하게 이익을 냈기 때문에 자칫하면 농업사회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최소 자본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인들의 모습이 ‘의(義)’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개념에 위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농업을 중요하게 여기고 상업을 억제하는 ‘중농억상’ 정책으로 이어져 왕조는 바뀌어도 상업과 상인을 천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바뀌지 않은 채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사회에서 배척당한 상인들은 주류에 합류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바로 농업사회를 움직이는 유가사상의 ‘의로움’과 상업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 경제를 이해하려면 ‘유가의 도리(義)’와 ‘상인의 도리(利)’의 깊은 인과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상인은 “천하에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할 만큼 곳곳을 누비며, 지배층이나 다른 직업인들이 미처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확인하고 지식을 넓혀 갔다. 상인들의 이런 넓은 견문과 탄탄한 경제력은 오랜 천대 속에서도 사회 변혁을 능동적으로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했으며, 유가의 도리와 상인의 도리를 일치시키려는 상인 정신은 오늘날의 중국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뿌리가 되었다.
중국 시장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
수교 20여 년 만에 우리는 중국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어떤 분야는 실패해서 철수했고, 어떤 분야는 아직 기술력이 앞서 있으나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이 턱밑까지 쫓아오며 차이가 좁혀지다 보니 숨이 찰 수밖에 없다.
많은 한국 상인들이 생산, 유통, 판매 등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 시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이 말을 곱씹어 보면 해결책은 바로 그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중국과 중국 시장을 알고 있는가? 혹시 같은 한자문자권이라는 동질감과 오랜 역사 관계 때문에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국 시장에 진출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상인들 중에 이 모든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물론 시중에는 이런 물음에 답할 목적으로 비즈니스를 포함한 중국학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와 있다. 한 가지 특징은 대부분의 책들이 오늘날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의 모습을 담은 최근 30여 년에 대한 자료들로서 나름의 분석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상인들의 정신과 문화를 이해하려면 역사와 함께 성장한 그들의 뿌리와 성장 과정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 그래야 중국 경제 성장의 주인공인 상인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우리의 정신적, 문화적 자산을 바탕으로 중국 문화를 바라보고 착실하게 공부하고 준비한다면 중국 시장에서 실패의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 지정학적 위치로나 문화적 전통으로 우리만큼 더 나은 조건을 구비한 상인들도 없을 것이다. 기본에 충실한 준비만이 중국 시장 문제 해법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