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저자
이병훈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13-02-11
등록일
2015-09-25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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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너무 익숙한 그러나 너무 낯선 이름,
도스또예프스끼라는 우주를 여행하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도스또예프스끼, 그는 19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이자 인간의 정신세계를 가장 신랄하게 파헤친 잔인한 천재지만 우리 집 책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켜켜이 먼지 쌓인 낡은 이름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구석에 처박힌 그 이름을 환생시킬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이 책은 독자들을 도스또예프스끼의 생애, 작품, 예술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서이다.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를 통해 러시아의 대표적인 도시와 그 안에서 탄생한 찬란한 문화예술의 발자취를 폭넓게 다루었던 저자 이병훈이, 이번에는 시공을 초월한 대문호의 연대기를 축으로 그가 살아간 시대와 공간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과 사상의 향연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복원해냈다.?
저자가 모스끄바 국립대학 재학 시절 도스또예프스끼 세미나에 참여하면서부터 모아온 방대한 자료와 더불어, 2009년과 2010년 여름, 도스또예프스끼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모스끄바, 대부분의 작품 활동을 전개한 뻬쩨르부르그, 10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중 4년간 감옥살이를 한 옴스끄, 말년에 가족과 전원생활을 즐긴 스따라야 루사 등을 직접 돌아보면서 취재한 기록으로 현장감과 입체감을 더했다. 원문에 보다 충실하게 새로 번역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과 편지글, 주변 사람들의 회상기 등 풍부한 예문과 다양한 현장 사진 및 자료 도판을 담아,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 또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도스또예프스끼의 가족사와 유년 시절을 알아볼 수 있는 동생 안드레이의 회상록, 공병학교 시절 모습을 짐작케 하는 친구 뜨루또프스끼의 회상기, 일부 『작가의 일기』, 저명한 도스또예프스끼 연구가 L. 그로스만의 기록 등 그간 국내에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자료들을 처음 우리말로 소개했다.
따라서 이 책은 기존에 번역, 출간된 몇몇 평전이 가진 관점의 한계를 넘어 인간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의 여정을 가능한 다양한 사람들의 기록과 증언에 따라 복원하는 충실한 전기이자, 그가 러시아 곳곳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생생한 여행기, 동시에 작가 도스또예프스끼의 문학과 예술론을 개괄하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도스또예프스끼를 찾아 나선 길에서
그가 절망의 시대에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를 발견하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제목은 장편소설 『백치』의 주인공 미쉬낀 공작이 반복하는 말로, 도스또예프스끼의 예술관을 응축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외형적이고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선한 정신’에 의해서만 윤리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불완전한 상태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지상의 아름다움을 선과 악의 경계선 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 무정형의 아름다움은 선한 정신에 의해 평정을 되찾을 때만 세상에 구원의 빛을 선사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듯 도스또예프스끼의 여러 작품을 통해 그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를 탐색한다. 그것은 죽은 지 130년이 지난 이역만리의 작가를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가 왜 다시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저자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청년 시절, 산산이 부서졌다 다시 태어나는 라스꼴리니꼬프를 보며 삶의 고비를 넘긴 저자는 “우리 누구에게나 라스꼴리니꼬프-갈라놓다, 분리하다, 분리주의자라는 뜻이 있다-적인 측면이 있다. 자기 안의 라스꼴리니꼬프를 직시해야만 현대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육체와 정신, 자기와 타자, 개인과 사회, 이상과 현실, 삶과 생존의 뿌리 깊은 ‘분리’를 극복하고 다시금 순수한 생의 에너지를 회복할 열쇠가 도스또예프스끼 작품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책장 구석에 방치된 도스또예프스끼를 펼쳐 들 때이다. 그 깊고 넓은 우주로 나아가기 전에 든든한 사전 지식을 제공하고 훌륭한 동기 부여가 되어줄 이 책과 함께 새해 목표로 도스또예프스끼 작품 읽기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책을 읽으면서 책장 안에 유폐한 낯선 이름을 다시 불러보시라. 도스또예프스끼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본래적 영혼을 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귀를 기울이자. 온몸으로 그의 육체와 정신을 느껴보자. ‘나’를 통째로 뒤흔드는 고요한 반전과 전복을 경험할 것이다._들어가며 「다시, 도스또예프스끼」
도스또예프스끼를 이해하는 몇 가지 이정표
【도스또예프스끼와 돈·가난】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문학에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가난이다. 뿌쉬낀, 뚜르게네프, 똘스또이 등 19세기 유명한 러시아 작가들은 대부분 부유한 귀족 출신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해 비교적 여유 있게 살았다. 그런데 도스또예프스끼는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풍족한 생활을 누려보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항상 빚에 쪼들려 채 퇴고도 하지 못한 원고를 헐값에 넘겨야 했다. 비교적 형편이 좋았던 똘스또이, 뚜르게네프, 곤차로프 등이 인쇄용지 한 장당 500루블을 받았던 반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죄와 벌』『백치』『악령』의 원고료로 장당 50루블, 『미성년』은 205루블 내지 210루블, 마지막 소설인『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도 겨우 300루블 정도를 받았다. 돈이 궁해 손을 먼저 내밀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비애였다. 한편으로 10년간 룰렛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이 경험은 장편 『노름꾼』의 밑거름이 되었다). 모든 빚은 죽기 1년 전에야 겨우 청산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그의 첫 작품 제목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없다. 웅장한 저택과 잘 다듬어진 정원, 화려한 응접실과 편안한 침실, 실크 드레스를 입고 보석으로 몸을 치장한 부인들, 여름밤을 유혹하는 낭만적인 야회 같은 디테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살았던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심각한 빈부 격차였다. 짧은 기간에 도시 빈민들이 빠른 속도로 팽창했고, 그들은 마땅히 먹고살 것이 없었다. 그가 자주 옮겨다니며 살았던 뻬쩨르부르그의 센나야 광장 근처에는 도시 빈민들의 임시 거처, 선술집, 사창가가 밀집해 있었다. 센나야 광장에서 사방으로 뚫린 거리와 복잡한 뒷골목, 구불구불한 운하는 그대로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문학을 상징하며, 『죄와 벌』 등에서 실제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결국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에게 가장 친근하고 가까운 주제와 소재를 선택했다. 그는 이것이 러시아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작가로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도스또예프스끼와 죽음·부활】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평생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소년 시절 표도르(도스또예프스끼의 이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1837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죽음은 가족의 해체를 불러왔다. 이해는 형 미하일과 표도르가 가장 존경했던 시인 뿌쉬낀이 결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은 해이기도 하다. 동생 안드레이의 회상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미친 사람처럼 흥분했다고 한다. 도스또예프스끼가 공병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1839년에는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1849년 지식인들의 모임인 뻬뜨라셰프스끼 서클에서 금서인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끼의 편지」를 낭독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은 사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황제 니꼴라이 1세가 ‘4년간의 징역, 그후에는 사병 복무’라는 실제 판결을 숨긴 채 주요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가 형장에서 특사 칙령을 발표하는 식의 극적인 연출을 계획했던 것이다. 1849년 12월 22일, 황제가 각색하고 직접 연출한 해프닝은 도스또예프스끼에게 치명적인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순간을 20여 년이 지난 후 장편소설『백치』에서 그대로 재현했다. 그렇게 떠난 10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기간 동안 그는 일종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다. 특히 옴스끄에서 4년간 감옥살이를 할 때 악화된 간질 발작은 도스또예프스끼를 평생 괴롭혔다. 「여주인」의 무린, 『학대받고 모욕당한 사람들』의 넬리, 『백치』의 미쉬낀 공작, 『악령』의 끼릴로프,『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스메르쟈꼬프 등 도스또예프스끼 소설 주인공들 중에는 간질병을 앓는 인물이 유독 많다.
1878년 말년에는 막내아들 알료샤를 간질 발작으로 잃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에게 유전된 병으로 아들이 죽자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요양차 찾은 옵찌나에서 그는 수도사 암브로시(1812~1891)를 만나 큰 위로를 받게 된다. 수도사 암브로시는 바로『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등장하는 조시마 장로의 모델이다. 소설 속에서 아들을 잃은 아낙네가 조시마 장로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자 장로는 다음과 같이 위로한다.
“이것이 당신들에게 부과된 지상의 시련이라오. 그러니 위안을 구하려 하지 마시오. 위안을 구할 필요도 없어요. 위안을 받으려 하지 말고 울도록 하시오. 그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당신 아들이 하느님의 천사가 되어 천국에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고, 당신의 모습과 눈물을 보고 기쁘게 생각하며 그것을 하느님께 알리고 있다고 항상 생각하시오. 당신은 앞으로도 어머니로서 이 큰 비애를 겪어야 하겠지만 나중에 그것이 고요한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이고, 당신의 괴로운 눈물은 사람을 죄악에서 구하는 연민과 정화의 눈물이 될 것이오. 자, 그럼 당신 아들의 안식을 위해 기도를 드리겠소. 아이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알렉세이입니다, 장로님.”
여기서 아들을 잃은 아낙네는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이다. 아낙네의 아들 이름인 알렉세이(알료샤의 본명)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아들 이름과 같다. 도스또예프스끼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조시마 장로와 알료샤를 통해 사랑과 부활, 구원의 메시지를 구현했다.
【도스또예프스끼와 도시·공간】
러시아의 저명한 문예학자 D. 리하초프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들은 진실의 감각을 미리 계산해놓고 있다. 만일 독자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 속 사건이 일어난 장소들을 알지 못하면 많은 것을 잃고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실제 살아간 공간과 작품 속 공간을 대비시키며,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을 좀더 깊이 감상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 모스끄바
-작가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
-죽기 1년 전 뿌쉬낀 축전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남긴 곳
형 미하일과 표도르는 1837년 4월 아버지를 따라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뻬쩨르부르그로 떠났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때 모스끄바를 떠나 평생을 모스끄바 밖에서 살았다. 그가 다시 이 도시를 찾은 것은 일 때문이었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모스끄바를 잊지 않고 그리워했다. 슬라브주의자들은 모스끄바를 정신적 고향으로 여겼다. 도스또예프스끼도 슬라브주의자로서 모스끄바를 러시아 정신의 부활이라고 굳게 믿었다.
★ 뻬쩨르부르그
-작가가 일생에 걸쳐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른 곳
-주요 작품의 모태, 배경이 된 곳
도스또예프스끼가 자주 옮겨다니며 살았던 센나야 광장 근처는 뻬쩨르부르그의 어두운 구석을 대표한다. 센나야 광장은 뻬쩨르부르그에서 유동인구가 특히 많은 곳 중 하나이다. 주로 재래시장과 거리 상점들이 몰려 있어 서민들이 자주 운집하는 곳이다. 19세기에 이곳에는 도시 빈민들의 임시 거처, 선술집, 사창가가 밀집해 있었다. 센나야 광장에서 사방으로 뚫린 거리와 복잡한 뒷골목, 구불구불한 운하는 그대로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문학을 상징한다.
★ 옴스끄
-10년간의 유형 생활 중 4년간 감옥살이를 한 곳
옴스끄에 대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1854년 옴스끄 감옥에서 나와 형에게 쓴 2월 22일자 편지에서 그는 이 도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옴스끄는 구역질 나는 도시야. 나무 한 그루 없어. 여름이면 타는 듯한 더위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겨울에는 눈을 동반한 폭풍이 불어닥치지. 자연다운 곳이라곤 한 군데도 볼 수가 없어. 극도로 부패하고 지저분한 위수(衛戍) 도시야.”
★ 스따라야 루사
-작가 가족의 여름 별장이 있던 곳
뻬쩨르부르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도시 스따라야 루사는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이다. 조용하고 물가도 싸서 도스또예프스끼 가족이 살기에 적당했다. 게다가 좋은 온천이 있어서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던 도스또예프스끼는 이곳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뻬쩨르부르그에서처럼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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