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햇살 굴려 여기까지 왔다
간이역마다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기억들을 지나,
생을 온전하게 이끄는 ‘한 줄기 햇살’ 따라 떠난 여행
김기순 수필집『한 줄기 햇살 굴려 여기까지 왔다』
문화적 충격이나 거창한 감동만을 기대하며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삶에 대한 소소한 깨달음이 여행의 목적이라면 이는 수필이 주는 감동과 많이 닮아 있다.
김기순 수필집 『한 줄기 햇살 굴려 여기까지 왔다』는 한 권의 여행서이다. 간이역마다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기억들을 지나, ‘여기’라는 종착역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다. 신세계에서 느껴지는 경이나 감탄은 없지만,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汽笛과 같은 운치와 여운이 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자의 설렘과 두려움, 힘겨웠던 시대가 생에 드리웠던 그늘들. 이에15것을 극복하는 힘 역시 세상에 충만하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중심이 되어 책에 담긴 한 편 한 편이 수필이 줄 수 있는 감동 이상의 깨달음을 준다. 저자의 그 따뜻한 마음을 책에 온전히 담아냈기에 책에 손을 대는 순간 독자는 마음에서부터 온기를 느낄 것이다.
그늘만 가득한 우리 현대인의 일상. 수필집 『한 줄기 햇살 굴려 여기까지 왔다』를 통해 더 이상 그늘이 아닌, 생을 여기까지 이끈 한 줄기 햇살 같은 희망을 가슴에 안고 미래를 꿈꾸어 보자.
인생, 종착역이 없는 여행
생은 한 편의 여행이다. 우리는 갖은 종착역을 목표로 두고 나름의 여행을 떠나지만, 사실 하나의 생이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그곳’에 도착하지 못한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종착역의 존재 여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이 끝없는 여행에서 우리는 이미 ‘그곳’을 지나쳤을 수도, 절대 ‘그곳’에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떠한가. 지금까지의 생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생을 가늠해보는 ‘여기’. 현재 생활의 한가운데 우두커니 선 자者의 성찰과 예감이 공존하는 지점, 그 생을 균형으로 이끄는 접점. 그렇다면 지금 ‘여기’야말로 실질적인 종착역이 아닐까. 김기순 수필집 『한 줄기 햇살 굴려 여기까지 왔다』는 생을 통해 지금까지 지나온 간이역들에 관한 기록이지만 저자가 끝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여기’다.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
그늘만 가득했던 생이었다 해도
김기순은 삶의 내밀한 부분들을 마치 현미경처럼 정밀하게 포착해 냈다. 그녀가 기록한 삶은 시대적 풍경이 그대로 녹아내린 탓에 평범한 수필이라기보다, 한 편의 시대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힘겨웠던 지난 시절이 우리에게 강요했던 그늘. 그래서 더 생생하고 읽는 내내 독자에게 애잔함을 안긴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는 저자의 담담한 고백이 이토록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렇게 힘겹던 ‘그늘의 시대’였지만 그때가 행복했다는 이야기가 왜 이렇게 마음을 어루만질까.
이마에서 어른거리는 한 줄기 햇살. 살아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자 특권. 힘겨웠기에 더 발버둥 쳤고 살아 있기에 더 아름다웠던 순간들. 그래서 지금 ‘여기’가 소중한 까닭이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예감케 하는 지금 이 순간순간들. 그래서 늘 생에 감사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줄기 햇살 같은 희망만 있다면
생을 가득 메운 그늘의 기억들을 지나 한 줄기 햇살 굴려 여기까지 이끌어 온 삶. 저자는 “많은 시간 속에서 소중한 기억은 남는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소중한 기억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책 『한 줄기 햇살 굴려 여기까지 왔다』를 통해 먼지가 쌓인 채 내버려진, 그 아름다운 기억들을 독자의 마음 한구석에서 꺼내어 주는 것, 그것이 이 시대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이 모두의 가장 큰 사명이요, 기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