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테마로 만나는 아트 살롱
10개의 테마로 만나는
아트 살롱
결혼에서 패션까지, 10개의 테마로 읽는 미술사
한 시대를 풍미한 그림을 통해 사회문화적 트렌드를 이해하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 유경희가 초대하는 살롱에서의 예술 티타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사 테마는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리는 ‘수태고지’입니다. 왜 ‘수태고지’냐고요? 예술, 특히 물질이 기본이 되는 조형미술이야말로, 영혼이 육화되는 수태고지에 다름 아닌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림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또 살맛나게 해줍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즐겁고도 섬뜩한 상징적 잉태 사건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예술과 인문학을 통과하는 ‘꿈’ 의 잉태를 알려드리는 가브리엘 천사가 되어드리지요.”
_「들어가는 글」에서
그림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에게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걸린 아름다운 명화들이지만, 사실 명화 속에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수많은 힌트가 숨어 있다. 『10개의 테마로 만나는 아트 살롱』은 우리네 삶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주제인 결혼, 패션, 카페, 여행, 요리 등의 테마를 화폭에 담고 있는 명화를 찾아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명화가 담고 있는 시대상과 화가의 진솔한 모습들까지, 이 책은 기존 미술교양서들이 다루지 못했던 삶의 이야기를 문화적으로 풀어낸다.
이 책은 2004년에 나온 『테마가 있는 미술여행』의 개정증보판으로, 책 내용 중 결혼, 아동, 요리, 살롱, 카페, 여행의 여섯 개 테마는 개정증보판에 새로이 추가한 것이다.
‘아트 살롱’에서 만나는 기나긴 그림 이야기
요즘 미술관이나 대형 기획전에 가면 으레 ‘도슨트’의 안내 시간이 따로 마련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림과 도슨트를 앞에 두고 흥미롭게 설명을 듣고 있는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그 시간을 놓친다면 그림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도 손쉽게 빌릴 수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사이좋게 이어폰을 나눠 끼고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그림은 그냥 보고 느끼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보는가, 스토리를 알고 보는가는 어쩌면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 단, 그림 한 점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보면 그림만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세계가 엄청나게 확장된다. 이러이러한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넘어가는 것과, 그림 안에 숨겨진 코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감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가령 서양미술사를 접하다 보면 한번쯤 스쳐갔을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 「아르놀피니의 결혼」(얀 반에이크, 1434)은 다양한 암시로 가득 차 있다. 신랑이 잡은 신부의 오른손은 화합과 서약을 의미하고, 신랑 신부의 뒤에 놓인 침대와 붉은 천은 재산의 정도와 지위를 말한다. 침대 헤드보드에 있는 목조 장식은 자식을 바라는 여성들의 수호성인인 성녀 마르가리타 상이며, 걸려 있는 총채는 라틴어로 ‘비르가’(virga)라고 하는데 이는 처녀라는 뜻의 라틴어 ‘비르고’(virgo)를 연상시킨다. 그 밖에도 거울 옆의 묵주, 벽면의 원형 거울, 샹들리에, 바닥에 널려 있는 신랑 신부의 나무 샌들, 하다못해 창가에 놓인 과일(사과와 오렌지)조차 모두 나름의 의미를 품고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암시는 백지 상태로 그림을 접하면 전혀 알 수 없는 정보이자 재미다.
소소하지만 그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는 알 수 없는 코드들을 하나하나 해석하며 첫걸음을 떼는 『아트 살롱』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림 뒤에 버티고 있는 시대상으로 독자를 한층 깊숙이 끌어들인다. 결혼, 아이, 요리, 패션 등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상사를 시대별 그림의 흐름으로 읽는 것이다. 그림에 얽힌 배경과 일화들이 사슬처럼 엮이면 결국 그것은 일종의 드라마가 된다. 의도하지 않아도 기승전결의 구조를 취하며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한 관람자를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림에 감정을 투영하게 되면 그것은 나의 그림, 나의 삶이 된다. 먼 나라의 결혼식 그림이 아니라, 아르놀피니 부부를 지켜본 이웃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술처방연구소’를 운영하며 꾸준히 대중강좌를 해온 지은이 유경희는 미술 이야기를 하면서 역사, 문학, 영화, 인간관계, 각종 사회문제 등 잡다한 주제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것에 익숙하다. 잡다하다는 것은 곧 ‘하이브리드’를 뜻하며, 그것은 『아트 살롱』의 저변에 흐르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10개의 테마 아래 온갖 다양한 그림들을 배치해 놓고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이 책에는 오늘날 화두 중 하나인 ‘르네상스적인 사고방식, 즉 통섭의 시각’이 담겨 있다. 각 테마별로 르네상스 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기나긴 시대를 무리 없이 일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지은이는 마치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 같다. 넓은가 하면 깊고, 깊은가 하면 넓은 예술과 삶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미술사와 인문학의 결합이 이토록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트 살롱’에서 만나는 10가지 테마
결혼, 아이, 요리, 정물, 패션, 살롱, 카페, 여행, 축제, 후원. 『아트 살롱』은 이 10개의 테마로 선별한 수많은 그림을 통해 우리 삶을 파노라마처럼 이어놓는다. 각각의 테마를 위해 골라놓은 그림과 다종다양한 경로를 거쳐 건져 올린 일화들은 시대별로 그 테마가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초미의 관심사인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 살롱에서 시작된 예술가와 철학자에 대한 후원이 결국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내게 된 과정, 살롱 이후 예술 혁명의 산실이자 삶의 애환이 담긴 카페의 존재 의미, 먼 곳을 동경하는 낭만적 기질을 지닌 예술가들에게 다가온 여행,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는 그림이라기보다 흥미롭고 종교적인 텍스트라는 사실, 17세기가 돼서야 그림의 주인공으로 겨우 등장한 아이를 통해 유추하는 중세시대의 아동에 대한 개념, 그저 몸을 가리는 것으로 족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로코코 시대에서 활짝 피어난 패션은 옷의 기능을 넘어 사랑의 담론을 가득 담은 ‘언어’로 작용했다는 것 등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림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곤 한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수많은 그림들은 사슬처럼 그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내 앞의 그림 한 점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 맥락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이 바로 그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