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막장드라마에 열광하는가
드라마의 어떤 점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걸까?
2013년 가을과 겨울,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계속해서 거론되는 드라마 이름이 있었다. 일일 드라마 [오로라 공주]이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방영중인 드라마가 거론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로라 공주에 대한 인터넷 기사나 댓글은 다른 드라마와 다르다. 다른 드라마들에서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배우들의 연기, 명장면, 줄거리의 전개 방향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오로라 공주에 대해서는 그런 것들보다는 비판에 대한 목소리다. 오로라 공주를 욕하는 이야기들로 포털사이트가 채워진다.
언론은 그 사회의 표상이다. 언론에 어떤 이야기가 오르내리느냐 하는 것은 현재 그 사회가 어떤 상태인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나타내주는 징표들이다. 언론에서 문제시되는 이야기들이 옳은가 그른가도 이슈가 될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문제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이라는 점이다.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고 논의되는 이야기들은 현재 그런 현상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 한국 사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오로라 공주는 2013년 봄부터 방영된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2013년 봄부터 존재해왔다. 일반 드라마와 같이 인터넷 연예란에서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되어 왔다. 그런데 2013년 가을부터는 오로라 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큰 이슈로 대두된다. 그건 오로라 공주의 스토리 전개 때문이었다. 보통 상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 드라마의 내용이 사전에 전혀 소개되지 않는 비밀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출연하는 배우들이 계속해서 죽거나 사라지는 전개가 큰 이슈가 되었다.
솔직히 너무하기는 했다. 드라마의 단역도 아니고 중요한 조연들이 10명이 넘게 사라졌다. 미국으로 가버렸다는 설정, 죽었다는 설정으로 이름을 알만한 조연급들이 계속 사라졌다. 그런데 출연 배우들도 자기가 드라마에서 빠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출연하는 배우들도 모르고 있었다. 제작진도 몰랐던거 같다.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작가만이 알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오로라 공주에 대한 비판의 반은 작가에 대한 비판이다. 작가가 이전부터 막장 드라마를 써왔다는 것, 신비주의를 포장하는 특성, 모든 것을 아무하고도 의논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행태 등등도 인터넷 상에서 문제가 되었다.
이런 드라마의 전개, 그리고 드라마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그동안 오로라 공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소위 막장 드라마라는 것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드라마 제작 현실과 실태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다. 나아가 작가 퇴출 운동, 막장 드라마 퇴출 운동 마저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오로라 공주는 방송내내 논란에 휩싸였다. 드라마 내용 뿐만 아니라 드라마 외적인 제작 환경과 관련해서도 끊임없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드라마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비판, 작가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최근 10여 년 동안에 이렇게 욕을먹고 비판을 받고, 작품 내용이 비하되는 드라마는 없었다. 앞으로 10여년 내에도 이렇게 욕을 먹는 드라마는 없을거 같다. 욕을 먹고 비판받는 드라마라는 면에서 오로라 공주는 정말 독보적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오로라 공주 드라마는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연장 방송을 결정했고, 연장한 방송을 더 연장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드라마인데도 1차로 연장 방송을 밀어 붙였고 시청률이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평일 저녁 시간대에 방송하는 일일 드라마인데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주말 드라마라면 20%의 시청률이 그렇게 높은 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일일 드라마에서 20%면 정말 높은 시청률이다. 오로라 공주는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히트한 드라마인거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드라마인거다.
그리고 오로라 공주의 시청률은 처음에는 그것보다 더 높았다가 20% 대로 낮아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7% 정도의 시청률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오로라 공주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20%대로, 거의 3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정말 이상하다. 오로라 공주의 스토리 전개는 엉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출연 배우들이 10명이 넘게 도중에 하차한 드라마다. 막장 중에서도 이런 막장이 없다는 욕을 먹고 있다. 이렇게 비판을 받는다면 시청률은 줄어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높은 시청률이었다가 막장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다보니 시청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시청률도 떨어지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오로라 공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정말 많은 욕을 얻어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계속 올라갔다.
오로라 공주는 많은 역설을 보여준다. 드라마 내용과 전개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받지만 그래도 시청률은 올라간다. 드라마를 빨리 끝내라는 비판이 높아지는 중에 연장 방송이 결정된다. 작가 퇴출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도중에 시청률은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해 나간다. 드라마 작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 드라마 작가가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오로라 공주에서 나타나는 이런 역설들은 드라마에 대한 반대자도 많지만 드라마에 대한 찬성자들도 많다는 뜻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드라마를 욕하는 목소리, 비판하는 목소리들만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오로라 공주를 지지하는 층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건 오로라 공주가 단순히 드라마로서의 의의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오로라 공주는 현재 한국 드라마의 가치, 현실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 그리고 시청자들이 몸담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어떤 면을 드러내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2013년 가을의 한국 사회를 들끓게 만든 오로라 공주를 전체적으로 반추해보고자 한다. 오로라 공주는 막장 드라마이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라는 게 정확히 무얼까? 언제부터 막장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인기가 있게 되었을까? 그리고 오로라 공주는 도대체 무얼까? 오로라 공주 드라마의 내용은 도대체 무얼까? 드라마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기에 그렇게 욕을 먹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것은 왜일까? 드라마의 어떤 점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걸까?
나아가 사람들은 왜 오로라 공주를 보는 걸까? 인터넷 상에서는 그렇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시청률은 계속 올라가는 이유는 무얼까? 오로라 공주를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왜 오로라 공주를 좋아하면서 보는 걸까? 또 오로라 공주가 히트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현대 한국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이기에 오로라 공주가 히트를 칠 수 있는 걸까? 오로라 공주가 한국 사회의 어떤 특징적인 면을 반영하고 있다면, 오로라 공주가 반영하는 한국 현대 사회의 특징은 무언 걸까? 그리고 오로라 공주 같은 막장 드라마는 과연 언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막장 드라마는 완전히 정착된 하나의 장르인걸까 아니면 지금 현재에 반짝하고 사라질 하나의 트렌드일 뿐 인걸까?
오로라 공주는 2013년 5월에 시작해서 12월 20일에 종료되었다. 드라마 마지막 방송까지 오로라 공주에 대한 비판은 그칠 줄 몰랐다. 그러면서 시청률도 계속 높아졌고 인터넷 게시판에는 오로라 공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칭찬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었다. 이런 패러독스들은 사회적 현상의 여러 측면을 설명하기에 좋은 사례가 된다. 좋은 싫든, 옳든 그르든, 오로라 공주는 현재 한국 사회의 상징인거다. 오로라 공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