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강추!!!>“더 이상 읽기만 하는 바보로 살지 마라!”
위대한 인물, 위대한 가문, 위대한 나라를 만든 것은
독서량이 아니라 위대한 독서법이었다!
-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 저자 김병완의 기적의 독서법 완결판!
“미국인 6.6, 일본인 6.1, 프랑스인 5.9, 중국인 2.6, 한국인 0.8”
무슨 숫자일까? 바로 성인 기준 국가별 월 평균 독서량을 나타내는 숫자이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국민 독서 실태 조사 보고서〉, 2011년, 단위: 권). 한국인의 독서량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게 조사됐다. 중국조차 우리의 3배 이상의 독서량을 보이고 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선비들의 독서 풍경과 서당에서 글 읽는 학동들의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런데 지금 한국을 보면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돼버렸다. 왜 조선과 한국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긴 것일까?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를 통해 ‘도서관이 만든 사람’으로 잘 알려진 작가 김병완은 신간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아템포 펴냄)에서 이런 엄청난 독서의 양적 질적 수준차는 ‘독서법’의 차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제 35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 강국이었던 조선이 세계 최하 수준의 독서 후진국 한국으로 퇴보했다고 말한다. 그 핵심에 독서법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독서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제대로 된 독서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독서의 즐거움과 가치, 힘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그리고 민족으로 전락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인을 위한 최적의 독서법으로 조선 선비들의 독서법을 제안한다. 그것은 저자 자신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우연히’ 체득하게 된 초서(抄書) 독서법과 의식(意識) 독서법이다. 저자는 이 둘을 합쳐 초의식(抄意識) 독서법으로 명명했다.
조선 시대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인 다산 정약용은 특히 초서 독서법의 절대 신봉자이자 실천가였다. 그는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초서(?書)의 방법은 먼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그 후에 그 생각을 기준으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취사선택이 가능하게 된다. 어느 정도 자신의 견해가 성립된 후 선택하고 싶은 문장과 견해는 뽑아서 따로 필기를 해서 간추려놓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자신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뽑아서 적고 보관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재빨리 넘어가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독서를 하면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이면 다 읽을 수 있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두 아들에게 답함[答二兒]》)
초서 독서법은 다산 이외에도 세종대왕, 정조대왕, 그리고 마오쩌둥의 독서법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또 한 명의 위대한 학자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두 손을 모으고 똑바로 앉아 공경히 책을 대해야 한다. 마음을 통일하고 뜻을 모아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두루 살펴 뜻을 철저히 이해하되 모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조선 선비 담헌 홍대용도 《여매헌서(與梅軒書)》에서 “정신을 한데 모아 책에 쏟아붓는다. 이렇게 하기를 계속하면 의미가 나날이 새롭고 절로 무궁한 온축(蘊蓄)이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 모두 의식 독서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한국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독서법은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하지만 일제 치하에서 말살돼버려 후손들에게 이어지지 못한) 독서법이라고 말한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 때문에 서양 특유의 독서법(예를 들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방법)보다는 혼자 조용히 집중해 읽고 생각하고 쓰고 요약하는 초의식 독서법이 우리에게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손을 움직여 읽으면(초서 독서법) 뇌가 깨어나고,
의식을 집중해 읽으면(의식 독서법) 뇌가 편안해진다
바로 그때 독서의 기적이 일어난다!
“일제 35년 동안 말살된 선조들의 초의식 독서법을 복원하다!”
독서를 하는 이유는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의식의 확장과 강화, 그리고 생각하는 법의 획득에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속독과 발췌독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책(저자)의 주장과 씨름하여 온전히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독서법의 힘을 웅변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독서를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게 구체적인 독서 방법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독서 노트 작성법, 집중력 강화법 등).
3년 동안 도서관에서 거의 칩거하다시피 하며 책과 씨름해왔던 저자는 자신이 해온 독서법이 실제로는 이미 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이 독서법으로 사용해온 것임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 독서법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이 둘을 합쳐 초의식 독서법)이다. 초서 독서법은 눈만이 아닌 손까지 사용해 책의 중요 부분을 가려내고 베껴 쓰면서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고, 의식 독서법은 온 정신과 의식을 다해 온전히 책에 몰입해서 읽는 것을 말한다.
이 초의식 독서법을 몸과 마음에 온전히 체득하게 되면 책이 전달하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의 습득 차원에서 벗어나 해당 책의 저자와 책 속에서 만나게 되고, 이야기하고 논쟁하고 씨름하게 되며 그 결과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의식이 만들어져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럴 때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게 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저자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현대화한 초의식 독서법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BTMS(Book, Think, Mind, Summary. 읽고 생각하고 의식을 확장하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독서법’으로 명명한 이 실천법은 독서노트 쓰기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또한 의식 독서법을 위한 방법론으로 서구에서 열풍을 일으킨 ‘포토 리딩(Photo Reading)’과 ‘그뤼닝 학습법’에서 말하는 집중력 강화법(귤 기법, 골프공 연습법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속도의 노예가 되고 실용성만 강조되는, 그리고 글자 하나하나에만 집중하는 지금의 독서법으로는 절대로 인생을 바꿀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일제 35년 동안 후대로의 전수가 끊어져버린 선조들의 위대한 독서법을 다시 기억하고 복원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각’이 지배하는 이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속도의 노예가 된 빠른 독서법은 결국 사상누각이 될 뿐이다. 우리 선조는 그렇게 독서하지 않았다. (…) 수단으로서의 독서, 속도만 빠른 얕은 독서는 결국 독서하는 시간 전체를 허비시킨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독서를 함으로써 그 무엇 하나 얻지도, 변하지도, 성장하지도 못하는 그런 독서 후진국을 만들어온 것이다. 이 책은 속도와 수단에 침식당한 한국의 후진국형 독서 방법론을 향해 정면으로 일침을 가하는 최초의 독서법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초의식 독서법은 일제 35년 동안 단절되고 말살된 우리 선조의 독서법이다.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