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현장 - 이청준 문학전집 장편소설 7
우리 문단의 거대한 봉우리 이청준 소설의 전체적 이해를 통해 한국 현대 소설의 궤적을 추적하고, 새롭게 전개될 우리 소설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이청준 문학전집은 전 2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의 현장>은 여행중에 들은 한 여가수의 노래―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가 계기가 되어 말(어법)의 체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숙제를 풀어본 이야기이다.
가수 백남희의 아파트에 어느 날 낯모른 사내가 침입해 들어온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그녀의 육신과 정신을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백남희는 납치범 구종태에게 철저하게 복종, 순응하게 되고 기묘한 신뢰와 이해가 둘 사이에 싹튼다. 그녀가 처음으로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날, 그녀는 자신의 집 문 앞에서 한 발의 총소리를 듣는다. 구종태가 권총으로 자신의 이마를 쏜 것이다. 그의 시신과 총을 수습하고 집을 나온 그녀는 살인 혐의로 구속되어 심문을 받게 된다.
소설은 진실한 과거를 재경험하려는 백남희와 그녀를 도와 살인 현장을 재연시키려는 검사 사이에서 엮어진다. 자술서를 쓰는 피의자와 현장검증을 하는 검사는 둘 다 진실을 향해 가지만 접근하는 방향이 다르다. 전자는 삶을 모순으로, 후자는 논리로 이해한다. 둘은 각각 심정적 고백어와 공리적 설명어의 대변자들이다. 현장검증 이후 전개되는 검사의 의기양양한 주장은 역설적으로 독자에게 논리의 한계를 보여줄뿐이다. 백남희의 진실은 검사의 진실을 뛰어넘어 그의 법을 의심케 한다. 이것이 이성이 억압한 감성이요, 일상언어가 억압한 시어요, 논리가 억압한 진실이다.